광평리와 동광리를 잇는 길가에 기슭이 닿아있는 오름이다.
곁의 여진머리(대병악)와 족은오름(소병악)이 한데 어울려 오순도순 이웃을 이루는 형상을 하고 있다.
등성이는 남~북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움푹한 굼부리를 감싸 안고 있다. 북사면과 정상으로 가는
등성이에는 한길 이상 된 억새가 자라나고 있으며 그 외 지역은 소나무와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는데 무성한 편이다. 오름 입구에서 북사면에 이르는 등성이에는 경방초소가 세워져 있다.
한편, 이 오름에서 동광초소로 연하는 곳에는 ‘무등이왓’이라 불려진 마을이 있었는데 4.3당시에 폐촌이 되었다.
2001년 4월에 제주도에 의해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안내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는 4?3사건의 와중인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터이다. …
4.3사건은 이 마을을 피해가지 않았다. 폐촌 후 주민들은 도너리오름 앞쪽의 큰넓게에 숨어드는 것을 시작으로
눈 덮인 벌판을 헤매다 유명을 달리했다.
한 할머니는 그 후 맷돌을 갈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노래했다. ‘난 돼지집에 숨언 살아수다. 살려 줍서, 살려 줍서 허는 애기 놔두고 나만 혼자 살아나수다. 4.3으로 무등이왓(130호)에서 약 100명, 삼밭구석(46호)에서 약 50명, 조수케(6호)에서 6명이 희생됐다. ….”
곁의 여진머리(대병악)와 족은오름(소병악)이 한데 어울려 오순도순 이웃을 이루는 형상을 하고 있다.
등성이는 남~북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움푹한 굼부리를 감싸 안고 있다. 북사면과 정상으로 가는
등성이에는 한길 이상 된 억새가 자라나고 있으며 그 외 지역은 소나무와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는데 무성한 편이다. 오름 입구에서 북사면에 이르는 등성이에는 경방초소가 세워져 있다.
한편, 이 오름에서 동광초소로 연하는 곳에는 ‘무등이왓’이라 불려진 마을이 있었는데 4.3당시에 폐촌이 되었다.
2001년 4월에 제주도에 의해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안내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는 4?3사건의 와중인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터이다. …
4.3사건은 이 마을을 피해가지 않았다. 폐촌 후 주민들은 도너리오름 앞쪽의 큰넓게에 숨어드는 것을 시작으로
눈 덮인 벌판을 헤매다 유명을 달리했다.
한 할머니는 그 후 맷돌을 갈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노래했다. ‘난 돼지집에 숨언 살아수다. 살려 줍서, 살려 줍서 허는 애기 놔두고 나만 혼자 살아나수다. 4.3으로 무등이왓(130호)에서 약 100명, 삼밭구석(46호)에서 약 50명, 조수케(6호)에서 6명이 희생됐다. ….”
찾아가는길
평화로(1135번)와 산록도로(1115번)가 만나는 광평교차로까지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
여기서 핀크스골프클럽 쪽 2.6km 지점의 오른쪽 길을 따라 1.4km(동광초소에는 동광단지를 거쳐 3.1km임)를 가면 입구에 도착됨.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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