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간도로(1136번)변의 분재예술원 입구까지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
여기서 조수리 쪽 1.5km 지점(수동삼거리에서는 300m임) 왼쪽의 길을 따라 150m를 더 가면
기슭에 도착됨.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됨.
한경면 저지리 수동(水洞)에 맞닿아 있는 오름으로 동네 쪽에서는 오름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으나
새오름 이계오름 쪽에서 보면 오름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내리막에 위치하고 있음도 까닭이 있지만 정상부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등성이가 농경지로 조성되었으므로 오름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한다.
오름 입구에는 예전에 꽤 많은 수량(水量)이 솟아남직한 샘과 어우러진 팽나무가 두 군데나 있어 이색적이다.
1702년(숙종 28)에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이 오름이 소재한 저지리의 이름을 ‘당지(堂旨)’로 표기된 것으로 볼 때 당못(堂池)은 이 마을 설촌에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후 부락이 형성되면서 ‘용달리, 계릉리, 명학리, 계지리’ 등으로 불려지다가 ‘마을에 닥나무(楮)가 많았던 데서 저(楮)+지대가 높다하여 지(旨)’, ‘마루 같아서 저지(楮旨)’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이 매우 귀해 일반 해안 용천수를 사용할 수 없어 봉천수에 의존했던 마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으나 황무지를 개척, 지리적 악조건에서도 농경문화가 발달한 마을, 비록 오름 등성이까지 개간하므로 인해 오름의 실체를 잃고 있지만 한 평의 땅이라도 이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의 개척근면정신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
새오름 이계오름 쪽에서 보면 오름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내리막에 위치하고 있음도 까닭이 있지만 정상부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등성이가 농경지로 조성되었으므로 오름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한다.
오름 입구에는 예전에 꽤 많은 수량(水量)이 솟아남직한 샘과 어우러진 팽나무가 두 군데나 있어 이색적이다.
1702년(숙종 28)에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이 오름이 소재한 저지리의 이름을 ‘당지(堂旨)’로 표기된 것으로 볼 때 당못(堂池)은 이 마을 설촌에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후 부락이 형성되면서 ‘용달리, 계릉리, 명학리, 계지리’ 등으로 불려지다가 ‘마을에 닥나무(楮)가 많았던 데서 저(楮)+지대가 높다하여 지(旨)’, ‘마루 같아서 저지(楮旨)’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이 매우 귀해 일반 해안 용천수를 사용할 수 없어 봉천수에 의존했던 마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으나 황무지를 개척, 지리적 악조건에서도 농경문화가 발달한 마을, 비록 오름 등성이까지 개간하므로 인해 오름의 실체를 잃고 있지만 한 평의 땅이라도 이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의 개척근면정신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