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 봉성리의 마을 이름은 어음비도내산리에 연원하고 있는데 마을 이름의 최초 기록은 1200년(고려 희종 7)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1352년(고려 공민왕 1)까지는 도내산리로, 1895년(고종 33)에 어도리로 개명하였다.
4?3사건 이후 불안한 사회 환경에서 리민의 안녕과 화합은 물론 침체 일로에 있는 마을의 면모를 새롭게 혁신 발전시키기 위하여 1953년 3월에는 마을 총회에서 리명을 개명하기로 결의하여 추진위원 16인을 선정하였다. 자체적으로 연구 검토하여 지형과 지세를 고려해서 지은 이름이 봉성리(鳳城里 : 이 오름이 옥봉귀소형(玉鳳歸巢形)으로 봉황이 성을 두른 형국)이며 1993년 4월 1일에 조례로 어도리를 봉성리로 바꿨다. 이런 연유로 인해 이 오름의 이름도 마을 이름의 변천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중산간도로가 마을을 우회하여 새로 개설되면서 오름 기슭이 길가에 닿아 있고 기슭을 따라 빙 돌아가면서 농로 구실을 하는 길도 개설되었다. 전사면은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숲을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이 오름은 동쪽이 정상인데 조선 시대 때 이 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동쪽으로는 고내봉수로, 서쪽으로는 만조봉수에 응했다고 한다.
서쪽 봉우리의 남서 중턱에 도림사(道林寺:1952년 창건)라는 절이 있으며 그 한 녘에는 절새미라는 샘이 있다.
두 봉우리를 사이에 둔 굼부리는 북쪽으로 벌어졌고 두어 가닥의 작은 등성이는 뻗어 내리면서 그 사이마다
자그마한 골을 이루고 있다.
4?3사건 이후 불안한 사회 환경에서 리민의 안녕과 화합은 물론 침체 일로에 있는 마을의 면모를 새롭게 혁신 발전시키기 위하여 1953년 3월에는 마을 총회에서 리명을 개명하기로 결의하여 추진위원 16인을 선정하였다. 자체적으로 연구 검토하여 지형과 지세를 고려해서 지은 이름이 봉성리(鳳城里 : 이 오름이 옥봉귀소형(玉鳳歸巢形)으로 봉황이 성을 두른 형국)이며 1993년 4월 1일에 조례로 어도리를 봉성리로 바꿨다. 이런 연유로 인해 이 오름의 이름도 마을 이름의 변천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중산간도로가 마을을 우회하여 새로 개설되면서 오름 기슭이 길가에 닿아 있고 기슭을 따라 빙 돌아가면서 농로 구실을 하는 길도 개설되었다. 전사면은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숲을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이 오름은 동쪽이 정상인데 조선 시대 때 이 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동쪽으로는 고내봉수로, 서쪽으로는 만조봉수에 응했다고 한다.
서쪽 봉우리의 남서 중턱에 도림사(道林寺:1952년 창건)라는 절이 있으며 그 한 녘에는 절새미라는 샘이 있다.
두 봉우리를 사이에 둔 굼부리는 북쪽으로 벌어졌고 두어 가닥의 작은 등성이는 뻗어 내리면서 그 사이마다
자그마한 골을 이루고 있다.
찾아가는길
중산간도로(1136번)변에 기슭(오름 표지석)이 닿아 있으며, 오름 표지석에서 한림리 쪽 50m 지점에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음.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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